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임스 에드가 존슨 (문단 편집) == 57회의 실전, 38회의 승리 ==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조니 존슨은 독일 점령하의 서유럽에서 끊임없이 전투 임무를 수행했다. 이 시기에 [[디에프 상륙작전|디에프 침공]], [[노르망디 상륙작전]], [[마켓 가든 작전]], [[벌지 전투]]를 고루 경험하고 마지막으로는 [[연합군]]의 [[독일 본토 항공전|독일 본토 침공 작전]]까지 모든 작전에 참가하며 수 십차례나 생사를 넘나들며 격렬한 공중전을 치러냈다. 전쟁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을 때 그의 계급은 공군 [[대령]](Group Captain)에 비행단장이 되어있었다. 다만 이때는 직책계급이어서 종전 이후 소령으로 돌아갔다가 10년 뒤인 1955년에 다시 대령으로 진급했다. 존슨은 공인 단독 격추만 헤아려도 34대를 기록해 '''[[RAF]]내의 최고 스코어는 물론 [[루프트바페|독일 공군]]을 상대로 최고 스코어를 올린 연합군 전투기 에이스가 된다.''' 추가로 공동 격추 7대, 비공인 공동 격추 3대, 10대는 중파, 지상 격파 1기를 기록했다.[* 공동격추는 절반의 스코어인 3.5로 처리하여 단독 격추수와 합해 총 38기 격추로 기록된다.] 700회의 작전 출격을 거듭하면서 57회의 교전을 경험한 그는 교전 회수 대비 격추수로는 루프트바페의 수퍼 에이스들에게 지지 않는 격추의 명인이었다. 34대의 개인 단독 격추 기록은 메서슈미트 [[Bf 109]] 전투기 14대, 포케불프 [[Fw 190]] 전투기 20대로 '''격추 기록이 모두 전투기인 것도 모자라 그 상대 전투기들은 당대 최상위권의 성능을 가졌다고 평가받던 고성능 일선 전투기들이었다!''' 그는 영국 공군에서 제일 상대하기 까다로운 적으로 손꼽던 Fw 190을 가장 성공적으로 공략한 에이스이기도 하다.[* Fw190이 처음 배치되었을 시점에서 영국 공군의 주력 기종은 스핏파이어 Mk.V였는데 이때 스핏파이어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적 주력기종에게 성능으로 완전히 압도당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당시 배치된 Bf 109F형도 쉬운 상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해볼만한 수준은 되었는데 Fw 190은 영국 공군이 손실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주간작전을 중단시키는 위엄을 과시했다!''' 물론 이후 스핏파이어 Mk.IX를 포함한 더욱 진보된 후계 기종이 배치되면서 대응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가장 까다로운 상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독일 전투기와 숱하게 싸워 이긴 존슨은 연합군 전투기 격추 최고 기록을 달성했던 한스 마르세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의문을 제기 한 일이 있다. 선전을 위해 전과를 과장하거나 피해를 축소하는 경우가 왕왕이었던 당시였기 때문에 100% 양쪽의 주장을 신뢰하긴 어렵지만 과장 가능성을 제기하기엔 충분하다 >나는 전투기 파일럿 중에서 가장 걸출한 격추의 명인이라고 불리는 독일 에이스의 기록을 자세히 조사해보았다. 북아프리카 사막에서 그가 최대의 전과를 거둔 날은 1942년 9월 1일로, 그는 이날 17대를 격파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 8대는 단 10분간의 교전에서 격추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RAF 보고서에는 이날 모두 합쳐 11대를 잃었을 뿐이고, 그중에서도 2대는 그 조종사가 언급하지도 않은 [[호커 허리케인]]이었다. 그나마 우리측 손해의 일부는 그의 전투기가 출격하기도 전에 입은 피해였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